네이버로 이전!

조금 전달이 늦었습니다만, 블로그를 네이버 블로그로 이전했습니다.

주소는 http://blog.naver.com/crossbringer 이구요, 여기에는 새로운 글들만 올릴 생각입니다.

혹시나 제 블로그를 가끔 들러줄 생각이 있는 분들은 저 주소로 들러 주세요. ^^

이 이글루의 블로그는 가끔씩 예전에 썼던 글들을 포스팅하는 백업 용도로 쓰일 것 같습니다.


by Reindeer | 2008/02/13 11:13 | 이 블로그는? | 트랙백 | 덧글(0)

메탈 기어 솔리드 3 Snake Eater

2005년 2월 초쯤에 메탈 기어 시리즈의 '감독' 코지마 히데오가 한국에 왔다고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죠. 메탈기어가 한국에서 출시된 게 2번째니 홍보의 의미도 있었겠고 세계적인 게임계 명사 중 하나가 되었으니 얼굴 팔러 온 의미도 있었겠지만, 코지마 본인이 말한 한국에 온 가장 큰 이유는 그런 것보다 영화 올드보이에 감명을 받아서 박찬욱 감독과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일본 게임의 전체적인 특징이 내러티브와 캐릭터성을 중시한다는 거지만, 그 와중에서도 코지마는 유별나게 "이야기를 좋아하는" 제작자입니다. 자기 머리 속에 있는 오타쿠성 네타와 현실적인 쟁점을 잘 버무려서 애절한 드라마와 함께 아주 거창하게 포장하고 싶어하는 의욕에 불타는 사람이죠.

하지만 그는 그 내러티브를 와닿게 하려면 일단 게임의 구조부터 탄탄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있는 현명한 제작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게임성 면에서도 빈틈없는, 신선한 시도와 치밀한 디자인으로 무너지지 않는 성처럼 탄탄하게 쌓여진 게임들이예요. 하지만 그 탄탄한 성마저 그에게는 내러티브를 강조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가 만들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일본의 다른 제작자가 만들고 싶어하는 이야기와는 성격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탄탄한 게임성이 필요 불가결했던 것이니까요.

메탈 기어 (1987년)
폴리스너츠 (1993년)

그의 제작 스타일은 이미 1987년에 MSX 용 게임으로 메탈 기어 1의 기획서를 작성했을 때부터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존의 일본 게임의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는 "영화같은" 구조의 새로운 스타일을 원했어요. 그 결과 무적이 아닌 주인공이 적 기지 속으로 잠입해서 액션과 함께 드라마틱한 갈등 과정을 거쳐가며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정말 헐리우드 영화적인 게임이 탄생했습니다. 그 전에도 코지마가 만들던 게임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이 메탈기어 1이 진짜 코지마 스타일의 시작이라고 봐도 되겠죠.

그리고 메탈기어1 발매후 1년이 지나 결정적으로 그의 팬들이 생겨나게 된 계기를 만든 야심작인 어드벤처 게임 '스내처'가 나오고, MSX용 메탈기어의 속편 '메탈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가 나오게 되자 그 스타일은 완전히 완성되게 됩니다. 그 이후의 그의 게임은 솔직히 이 게임들의 반복이라고 봐도 무관하죠. 스내처를 처음 만들 때 그의 나이가 불과 24살이었으니, 그 후로 17년이 지난 지금도 현역으로 뛰기에 충분하군요. 입지도 굳어졌으니, 앞으로 20년은 더 현역에서 게임을 제작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코지마에게 "빛을 가져다 준" 타이틀인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최신작인 메탈 기어 솔리드 3에서도 그런 그만의 스타일은 전혀 죽지 않고 건재합니다. 메탈 기어 솔리드 2보다는 훨씬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게임 플레이시간에서 비주얼 시네마틱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한 편이죠. 그렇기 때문에 하는 게임이 아닌 구경하는 게임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코지마 브랜드 게임에서 그런 걸 보는 재미를 빼면 무엇이 남을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화려한 비주얼과 탄탄한 연출에 스토리까지 그럴듯하게 잘 꾸며진 볼거리가 훌륭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면 뭐겠어요.

게다가 이번 3편의 시나리오는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잘 다듬어진 편입니다. 단순한 짜임새와 극적 재미로 따지자면 1편이 제일 낫겠습니다만,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코지마의 의도를 생각하자면 3편은 가장 완성도 높은 영화로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말할 만하거든요. 일단 1편보다 훨씬 제대로 된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고, 2편보다 훨씬 깔끔하게 정리된 플롯을 가지고 있어요. 만화 캐릭터 같은 보스들도 나름대로의 개성을 살리면서 스토리엔 크게 관여하지 않도록 조정되어서, 엔딩까지의 스토리 흐름을 깔끔하게 살리고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덕분에 더 보스, 오셀롯, 에바와 같은 주연들에 국한된 단 하나의 드라마를 즐길 수 있게 된 거죠. *1

하지만 시나리오가 깔끔해진 것에 비해, 시스템이 2편보다 훨씬 난잡해졌다는 것이 이번 3의 단점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복잡해진 시스템을 감당 못하고 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겠군요. 이번 3의 신시스템인 위장과 근접전투술(CQC)은 좋은 아이디어지만, 그 시스템을 자유자재로 쓰기 위한 배려가 부족해요.

가장 큰 문제는 시점입니다. 배경이 야외로 확장되어 좀 더 능동적인 행동이 필요한 상황인데, 시점은 메탈기어 시리즈의 전통적인 탑 뷰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야외에서만 시점이 변한다든가, 아니면 레이더까지는 아니더라도 화면 한쪽에 맵을 보기 쉽게 표시해 준다든가 하는 배려만 있었어도 주관 시점(R1) 버튼을 연타하는 플레이가 되진 않았을 거예요. 적의 위치 선정에 실패해서 결국은 람보 플레이를 하게 만드는 레벨 디자인도 2에 비해 모자란 느낌이고, CQC의 지나친 강화도 거슬리는 점입니다. 애초에 CQC는 그 사기적인 공격력 외에는 사용할 의미가 없는 시스템이예요. 적을 협박할 수 있다는 것이나 방패로 사용해서 쏠 수 있다는 건 좋지만 그다지 게임 상에서 자주 쓸 필요가 없는 행동이구요.

하지만 주위 사물을 이용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위장 시스템은 메탈 기어 시리즈에 어울리는 굉장히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됩니다. 되도록 다음 시리즈에도 나왔으면 합니다만, 스토리 배경이 미래로 돌아간다면 그것도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분명 상당히 잘 만들어진 게임이고 저도 정말 즐겁게 플레이했지만, 내러티브에 집착한 나머지 나머지 뒷마무리가 약간 소홀한 느낌이 아쉬운 게임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제 Z.O.E 2의 제작자인 무라타 슈요가 맡은 메탈기어 솔리드4가 제작개시되고, 코지마 히데오의 신작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장르의 작품이 될 거 같던데.. 완전 신작이 될 코지마 감독의 신작은 약간 늘어진 감이 없지 않은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보다 새롭고 의욕적인 게임이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1 물론 진짜 영화로 만든다면 좀 얘기가 달라지죠. 이런 시나리오로 영화를 개봉하면 과연 몇 명이나 높은 평가를 내려 줄지 알 수 없습니다. "영화로 만들면 망할 것 같은 게임"의 차트 1위에 등극한 적도 있는 메탈기어 시리즈니까요. 하지만 게임 시나리오와 영화 시나리오는 엄연히 다른 범주니, 게임 시나리오로는 나무랄 데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 remains.x-y.net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확장팩인 Subsistance가 나오기 전에 쓴 글이죠. 확장팩 이후 시점 문제는 확실히 좋아졌더군요. 코지마씨도 신작에 전념하겠다는 말을 뒤로 한 채 완전히 MGS4에 참여중입니다. -_-;

by Reindeer | 2008/02/11 03:24 | Favorite - 게임 | 트랙백 | 덧글(3)

킹덤 하츠 2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스퀘어 캐릭터 (정확히는 노무라 캐릭터)의 랑데뷰로 시작되는 전작 킹덤 하츠 1은 게임으로만 보자면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저 그런 액션 RPG에 속했죠. 시점은 불편했고 진행은 단조로웠으며, 스토리는 너무 두리뭉실하고 감상적입니다. 세계는 좁고 할 일은 한정되어 있었죠. 재미없는 스토리에 끌려가다 보면 끝나는 게임입니다.

거의 4년만에 나온 신작인 킹덤 하츠2도 여전히 어느 정도 그런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진행할 만 하면 이벤트로 호흡을 끊어먹는 것도 여전하며, 감상적이고 겉멋만 든 스토리도 변함 없습니다. 디즈니 캐릭터에 별로 호감이 없다면 대부분의 플레이타임을 차지하는 디즈니 스토리에도 재미를 느끼지 못할 거예요.

▲ 버튼으로 사용하는 "리액션" 시스템이
킹덤 하츠 2의 모든 게임 요소에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단점을 모두 감당해낼 수 있다면 올해 하반기의 콘솔 게임 중 이번 킹덤 하츠 2만큼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게임도 없을 겁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킹덤 하츠2도 게임성 자체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게임이예요. 킹덤 하츠2는 노골적으로 "직접 조작하는 애니메이션"을 표방하는 게임입니다. 그걸 위해 액션 RPG라는 게임 형식을 가져왔을 뿐이구요. 하지만 그 액션 RPG라는 기본 기둥이 좀 더 튼튼해지고, 비주얼이 게임 시스템에 정확하게 맞물려 들어가자 둘의 시너지 효과는 1편에 비해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이런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 가장 큰 공로자는 2부터 채용된 시스템인 ▲ 버튼 "리액션" 시스템입니다. 적과 전투를 하면서 커다란 △ 표시가 생기는 타이밍에 버튼을 누르면 화려한 액션과 함께 발동하는 리액션 시스템은, 킹덤 하츠1과 2를 구분짓는 가장 큰 변경점이자 킹덤 하츠2의 가장 큰 특징이예요. 이 시스템 하나만으로도 킹덤 하츠 2 가 1과는 격이 다른 게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합체기 시스템 덕분에
전작에선 거의 없다시피했던
동료와의 일체감도 훨씬 늘었습니다.
일단 게임성 면에서 전투 자체의 긴장감이 훨씬 늘었습니다. 이 리액션 시스템은 조무래기 적한테까지 세심하게 하나하나 할당되어 있는데, 그 액션이 하나같이 유용한 액션이라서 기회만 있으면 리액션 공격을 무의식적으로 노리게 됩니다. 예륻 들면 적의 뒤로 순식간에 돌아간다던가, 적의 능력을 순간적으로 배워 사용한다든가 하는 거죠. 특히 보스전에서는 이 리액션 공격을 사용하지 않으면 꽤 애를 먹도록 밸런스가 조정되어 있어서, 어느 타이밍에 세모가 지나갈지 긴장을 풀지 않고 화면을 주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리액션 시스템은 비주얼적으로 엄청난 장점입니다. 세모로 리액션 시스템을 발동한 순간, 주인공 소라는 '게임'의 주박에서 벗어나서 애니메이션 속에 들어간 듯한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게 되죠. 그 짧은 순간 게이머는 화면을 바라보는 것 외에 일체의 간섭을 할 수 없지만, 워낙 그 연출이 게임과 유기적으로 섞여 있는 탓에 그다지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새로운 적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연출이 나오기 때문에, 새로운 월드로 가면 "이번엔 어떤 적과 어떤 연출이 나올까" 하고 기대하게 됩니다.

이런 요소는 사실 킹덤 하츠 2가 처음 채용한 것은 아니죠. 완성도 높은 액션 게임이었던 'God of War'에서도 적의 HP를 깎으면 원버튼 액션으로 화려하게 피니시를 하는 시스템이 채용됐었고, 다른 게임에서도 이런 요소가 심심찮게 나왔었죠. 하지만 이 시스템을 이 정도로 적극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사용한 게임은 킹덤 하츠 2 뿐일 거예요. 게임성과 비주얼의 두 마리 새를 모두 잡는 효과적인 시스템이라 앞으로도 많은 게임이 사용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월드였던 Timeless River.
세계 최초의 유성 애니메이션 Steamboat Willie 의 세계입니다.
목소리가 모두 모노 음성에, 알만한 사람만 알 만한 디즈니 초기작의 패러디가 나오는 등
여러 모로 클래식 디즈니에 대한 애착이 느껴지는 월드입니다.

전작 킹덤 하츠 1이 예상 이상으로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에, 이번 킹덤 하츠 2에서는 디즈니측에서 그다지 게임 내용에 대해 큰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킹덤 하츠 2 에서는 뮬란과 라이온 킹 등의 유명한 작품의 새로 등장하는 반면, 증기선 윌리나 트론 같은 비교적 매니악한 작품까지 선정되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인 연출도 디즈니라기보단 FF7AC같은 곳에서 본 노무라제 게임의 연출에 좀 더 가깝게 보여요. 디즈니와 노무라제 겉멋 액션이 묘하게 섞여 있는 이 테이스트를 다른 분들도 꼭 즐겨 봤음 좋겠군요.


* reindeer.x-y.net 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by Reindeer | 2008/02/11 03:18 | Favorite - 게임 | 트랙백 | 덧글(0)

미스틱 리버 Mystic River

세 소년 지미 마컴, 데이브 보일, 숀 디바인은 미국 보스턴의 허름한 동네에서 함께 자란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정체모를 남자들에게 데이브가 납치되어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세 사람은 서로 멀어지고 세 사람의 삶은 제각기 다른 길로 갈라지게 됩니다.

25년 뒤, 형사가 된 숀(케빈 베이컨)은 지미(숀 펜)의 19살 난 딸 케이티의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그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고, 뜻밖에도 또 한 명의 어린 시절 친구 데이브(팀 로빈스)가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자 사건은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미스틱 리버는 죄의 순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피치못할 일로 큰 정신적 폭행을 당한 데이브는 그 사건을 가슴 한 곳에 트라우마로 심어둔 채 평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데이브의 트라우마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은 지미의 죄로부터 시작되어서 다시 지미에게 돌아온 끔찍한 결과입니다.

미스틱 리버에서는 선과 악보다는 그러한 죄가 낳아온 끊임없는 또다른 죄에 대해 밀도있고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한 마지막 부분의 숀과 지미의 대화는 저도 사족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퍼레이드 장면은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그 장면에서 선과 악을 갈라 버리고 선의 승리를 은근히 암시하는 헐리우드 스튜디오 영화의 공식을 지켰다면 이 영화의 의미는 아마 상당부분 사라져 버렸을 겁니다.

그런 스토리의 완성도를 더해 주는 건 역시 탄탄한 감독과 배우의 덕이구요. 전 개인적으로 계속 로버트 드니로를 떠올리게 했던 숀 펜도 좋았지만, 소심하고 불안한 눈초리의 팀 로빈스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멀고 먼 타지에서 테러리스트들에게 살해당하고 지금은 잊혀지고 있는 어떤 남자와, 서울 바로 한가운데에서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신문 뉴스란의 스타가 되었던 어떤 남자에 대해서 "이 남자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란 얘길 깊은 지식도 없이 주절주절 늘어놓는 건 얼마나 허망한 얘기인가를 느끼게 됩니다. 한 사람의 몰락에는 분명 이유가 있지만, 그건 그 사람 주위의 가정 사정이나 남긴 흔적 따위로 가볍게 판단할 만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좀 더 복잡하고 깊고, 어두운 죄의 사슬이 이 세상 모든 곳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 reindeer.x-y.net 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by Reindeer | 2008/02/10 14:09 | Favorite - 영화 | 트랙백 | 덧글(0)

킹콩 King Kong


No, it wasn't the airplanes. It was beauty killed the beast


(스포일러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 심한 건 아니지만.)

1938년 전설적인 원작이 나온 후 거의 67년만에 만들어진 2번째 킹콩 리메이크작은, 헐리우드에서 가장 방대한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반지의 제왕 감독인 피터 잭슨의 이름만으로도 굉장한 홍보 효과를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대 사람들의 입장에서 원작을 보지 못한 많은 요즘 관객들이 고릴라가 설치는 유치한 영화로 생각하고 있는 '킹콩'과, 21세기 들어 가장 놀라운 영화를 만들었던 '피터 잭슨'의 어느 쪽에 더 무게가 실렸을지는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겠죠.

확실히 피터 잭슨은 대단한 감독입니다. '킹콩'을 리메이크할 때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고, 그걸 요즘 시대의 정서에 맞게 훨씬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피터 잭슨의 '킹콩'에서, 콩은 좀 더 나이들었고 피곤해 보이며 전보다 더 인간적입니다. 여주인공 앤은 원작보다 훨씬 능동적이며 매력적인 인물이고, 심지어는 가장 악역에 가까운 캐릭터인 영화감독 덴헴까지도 완전히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킹콩'은 재밌습니다. 원작의 가장 큰 장점이 스펙터클과 엔터테인먼트성이었던 것처럼, '킹콩' 리메이크는 해골섬에 상륙한 지점부터 정신없이 이어지는 논스톱 롤러코스터식 전개를 보여줘요. 3시간이 지난 것도 모를 정도로 계속 이어지는 현란한 스펙터클을 보고 나면 정말 구경 한번 잘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죠. 이 재미만으로도 킹콩은 찬사를 받기 충분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죠. 다른 분은 어땠을 지 모르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어색하다고 느낀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의문은 이 앤이라는 여자의 행동이예요. 앤은 콩이 자신이 아닌 앤을 위해서 자기를 구해줬다고 생각한 걸까요? 의외로 인간적인 콩의 행동을 이해하고 정을 느꼈다고 해서 그렇게 맹목적으로 맹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맨하탄에서 콩과 재회할 때의 앤이죠. 분명 해골섬에서의 보낸 시간은 잊을 수 없겠지만, 그것만으로 갑자기 저렇게 깨소금이 쏟아질 수 있나요? 콩이 "나쁜 사람"들에게 괴롭힘당한 "좋은 동물"이기 이전에, 애인을 죽이려고 했고 자기를 구하러 왔던 동료를 살육했으며 뉴욕 사람들의 목숨을 뺏었는데도 콩 쪽의 편을 한결같이 들 수 있을까요?

분명 콩과 앤의 사랑에서 이성의 사랑 감정과 같은 느낌은 상당히 사라졌고 콩의 흉폭한 살육자적인 측면도 원작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설명이 부족하다 싶은 느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건 콩에게 지나치게 인간적인 측면을 주려고 한 피터 잭슨의 탓도 있어요. 원작의 콩은 원시 그대로의 흉폭한 동물이었고, 앤에게 성적인 호기심도 품고 있었습니다. 그가 앤을 사랑한 만큼 앤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죠. 그게 원작 영화 '킹콩'의 비극입니다.

하지만 리메이크 '킹콩'에서는 앤은 더 적극적으로 변하고 콩에게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감정의 이유를 좀 더 설득력있게 묘사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메이크의 앤은 적극적이고 매력적인 여성이지만, 너무 고결하게 그려진 덕분에 붕 뜬 느낌을 줍니다. 온갖 고초를 당해도 상처 하나 없는 완벽한 여성의 이미지랄까요. 이런 게 감독의 의도일 수도 있겠고 앤의 캐릭터성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거야말로 그다지 인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마지막 맨하탄 부분도 결말을 알고 있어서 좀 지루한 느낌입니다만, 이건 충실한 리메이크작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되네요. 주위 사람들에게 꼭 극장에서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지만, 제 기대만큼은 충족하지 못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reindeer.x-y.net 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by Reindeer | 2008/02/09 10:34 | Favorite - 영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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