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9월 03일
괴혼 - 굴려라 왕자님

점점 콘솔의 스펙이 올라가고 게임의 표현 범위가 확장되어 가는 요즘, 오히려 게임의 다양성은 줄어 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리곤 합니다. 나오는 것들은 죄다 속편 뿐이거나, 기존 게임의 요소에 이거저거 덧붙인 것들 뿐이라는 얘기들 말이죠. 특히 일본 쪽 게임들이 심하긴 하지만, 사실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게임이 드물어지는 정체 현상이 요즘 더 심해진 건 사실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역시 요즘의 제작자들이 지난 게임을 향유해오면서 기존 게임들의 문법을 알게 모르게 많이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요즘의 게임들은 만들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액션 게임이냐, RPG냐, 퍼즐 게임이냐, 시뮬레이션이냐 식으로 먼저 게임을 '정의'해 두고 만들기 시작합니다. 요즘은 장르간의 퓨전이 많아졌다고 해도, 결국 퓨전이란 단어부터가 장르의 벽을 넘지 못했단 반증이구요. 그런 장르의 구분은 사실 게임이 먼저 생긴 뒤 나누다 보니 생긴 건데도 말입니다. (게임이 아니라 어느 매체나 마찬가지지만요. 꼭 장르를 극복했다고 좋은 게임이 탄생하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게임과는 연이 없이 살아온 전직 조각가인 젊은 디렉터가 남코 경영진과 다른 디렉터들을 설득해가면서 만든 이 괴혼이란 게임에는, 그런 암묵적인 장르 법칙을 신경쓴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액션 게임이기 때문에 적을 때려야 한다든가, 퍼즐 게임이기 때문에 순발력이나 공간 자격력을 시험한다든가 하는 발상 이전에, 단순히 '굴린다' 라고 하는 행위 그 자체의 즐거움에만 집중하고 있지요. 그리고 단순한 행위에 보다 복잡한 게임성을 부여하는 여러 가지 요소의 활용이 대단한 게임입니다.

하지만 '굴린다'의 재미만이 이 게임의 전부는 아닙니다. 1차적으로 유저들에게 '굴리는 게임'이란 인식을 심어주어서 쉽게 친해지게 하고는 있지만, 괴혼의 재미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확장'과 '과장'이예요. 처음에는 겨우 지우개나 책 등의 작은 소품들만 잡아먹던 덩어리가 나중에는 점점 더 큰 운동화나 라디오를 잡아먹더니, 개와 사람도 빨아들이고 결국에는 건물과 섬까지 한입에 삼켜 버리는 그 확장이 게임을 재밌게 하는 거지요. 점점 큰 걸 삼키고자 하는 본능이 사람 내면에 숨겨진 즐거움 중 하나라고 한다면, 괴혼은 그런 면에서 새로운 게임의 영역을 개척해 낸 것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많은 오브젝트를 PS2란 하드에서 표현하려다 보니 폴리곤수를 극도로 아낀 사각형 위주의 그래픽이 되어 버렸지만, 그런 그래픽까지 하나의 스타일로 포장해 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스타일리쉬한 게임'으로 각인시킨 디자인도 멋집니다. 괴혼이 가진 '독특한 게임'이라는 이미지는 다른 게임이라면 판매량을 깎아내릴 만한 요소가 되었겠지만, 괴혼에서는 오히려 플러스 요소가 되죠. 괴혼은 겉만 독특한 게 아니라 정말로 시작부터 독특한 게임이었으니까요.

괴혼은 정말 독특하고 의욕적인 게임입니다. 특히 게임 개발자들이 반할 만한 게임이예요. 새롭고 간략하지만 게임이 갖추어야 할 것들을 모두 훌륭하게 갖춘 매력적인 게임입니다.
하지만 장르 게임의 벽을 뛰어넘었는지 몰라도 '독특한 게임'의 한계를 뛰어넘은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습니다. 여러 유저들이 괴혼의 독특함과 단순함에 끌려서 재밌게 즐기고 호평했지만, 괴혼을 수십 시간동안 잡으면서 플레이하는 사람은 없어요. 솔직히 3시간 이상만 잡고 있어도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픈 게임이지요. 독특하긴 하지만 단순함 이상의 깊이를 자랑하는 게임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아직 괴혼은 소품 이상의 무언가가 되기에는 부족해요. 그래도 일본에서 10만장 이상 팔리면서 의외의 대히트를 기록했다고 하던데, 덕분에 나올 예정이라는 괴혼 2에선 어떤 진화를 이루게 될지 기대하게 되네요.
*. 괴혼의 디렉터인 다카하시 케이타 씨는 일반적인 게임 음악을 싫어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더군요. 덕분에 괴혼의 OST는 정말 게임 음악 답지 않은, 보컬 위주의 컴필레이션 앨범 같은 느낌을 줍니다. 워낙 큰 손들이 앨범을 도와준 덕분에 정말 즐길 만한 음반이 되었으니 한번씩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해요.
*. 이런 게임이 나올 수 있는 인프라와 분위기를 가진 일본이란 나라는 정말 생각할 수록 신기한 나라입니다.
*. 요즘 업로드가 뜸한 건 워낙 주위 환경이 변해서 그런 거 같기도.. 솔직히 이젠 정말 적을 꺼리도 거의 떨어져 가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 제 주위 가십거리를 적으려고 해도 요새는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기 때문에 생각나는 일이 없어서 키보드에 손이 가질 않네요.. ㅠ ㅜ.ㅜㅡ,ㅠ.ㅠ.ㅠ.. . ..
# by | 2004/09/03 10:26 | Favorite - 게임 | 트랙백(2)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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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나나나 나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
2편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_+
2편이 나왔을 때도 한글화됐음 합니다!
나름대로 신선한 게임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레인디어님. 이글루 링크해 갑니다.'ㅂ'/
망르님, 링크 감사합니다.ㅠ